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선총잡이 민영익 이야기 에릭 닮은꼴로도 알려진 개화파 대표인물



볼만은 한데 은근 뜨지않는 '조선 총잡이'에 나온 민영익이 화제 입니다 드라마가 재미가 있을랑.. 말랑 그러더라구요

조선총잡이에 나와서 화제가 된 인물 민영익은 1860-1914. 조선 말기의 문신입니다. 그리고 개화사상가이며 예술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영익 아버지는 민태호, 어머니는 송씨라고만 알려져있네요 제가 못찾는건지..

일단 1875년에 승호(升鎬)와 그의 아들이 사망한뒤에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민비의 친정 조카가 되었습니다. 급제하여 이조 참의가 됐고 개화당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1882년 7월 임오군란 이전까지는 별기군의 실질적인 운영 책임자였구요

 

민영익

이 사진 때문에 에릭 닮은꼴로도 알려져있었죠

 

 

조선총잡이에서도 나오지만 신식군대와 구식군대 사이의 갈등이 많았던 시절. 임오군란이 발생하면서 민씨척족세력의 거물로 몰리면서 민영익의 가옥이 파괴됐습니다.

 

후에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으로 넘어가서 비공식 사절로 3개월정도 일본이 개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고옵니다

민영익은 총같은 신식무기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교육제도에도 관심이 있었고 후에 우편제도와 전기시설, 농업시설 등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민영익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The Smithsonian Institution)에 조선 약용 식물의 표본을 기증하여 최초의 문화 교류를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나라로 되돌아올때, 타작기나 벼베는 기계, 저울 등 농기구 18가지를 구입해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후에 갑신정변으로 큰 부상을 입게 되는 민영익 그러나 홍영식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 미국인 의사를 통해 치료를 받고 살아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민영익은 일본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김옥균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을 파견하기도 하는데요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고, 고종의 폐위음모사건에 연루되면서 홍콩이나 상하이 쪽으로  망명하였다. 잠시 귀국했다가… 또 다시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해서 친일 정권이 수립되자 다시 상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