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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대처 사망 이유 뇌졸중 / 상반된 네티즌 반응



세상에 마가렛 대처 사망이라는 속보보고 깜짝 놀랐네요

전 영국 총리 마가렛대처 사망 소식입니다

마가렛대처 전 총리는 지난해 말 방광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마가렛대처 전 총리가 얼마전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뉴스가 있긴 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병원에서 방광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고 했었는데요. 마가렛대처 전 총리는 방광 근처 복부의 통증을 호소하다가, 급하게 입원했었다고 합니다.


마가렛대처 사망


마가렛대처 사망

그리고 침습 수술을 받았다고 전해졌는데요.  

마가렛대처 전 총리 홍보 담당자 팀 벨이라는 사람이 마가렛대처 수술경과에 대해서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다"며 “대처 전 총리는 현재 병원에서 회복 중이며 가능한 한 빨리 회복되는대로 퇴원할 것"

이라고 발표를 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망을 했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가렛대처 별세 87세 일기로 별세...

[추가 소식]

마가렛 대처 사망이유가 공식적으로 발표 되었군요. 

마가렛대처의 가장 가까운 측근중 한명이자, 대변인인 팀 벨 경은 마가렛대처 사망이유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가 뇌졸중으로 투병하다, 오늘 아침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대처의 자녀들이 어머니의 서거 사실을 삼가 공표했다"

"대처는 가장 위대한 총리 중 한명으로 국민들의 삶을 바꿔놓는데 한 평생을 바쳤다"

마가렛대처 사망이유는 뇌졸중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의 의견은 다양한데요.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청담비루님 | 1시간전 |

    추천347반대47

  • 레이건과 쌍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악령을 전파하여 약소국을 무참히 짖밟은 악의 화신~!

    감자호크님 | 1시간전 |

    추천314반대79

  • 철의여인 이라는 호칭때문에 무작정 대처를 무슨 영웅인양 대하는 인간들 많네.

    후우님 | 1시간전 |

    추천282반대50

  • 불과 3시간 전 기사에 박그네가 대처를 배운다니 어쩌니 기사가 한국일보에 떳었는데... 이참에 같이좀 가셔잉 ㅋㅋ 하늘나라에서 배우셩ㅋㅋ

    초록악마님 | 1시간전 |

    추천385반대169

  • 신자본주의 신봉자 국가자산을 재벌에똥값에 넘긴년 노동자의 저승 사자 지옥에서 보자

    단군님 | 1시간전 |

    추천195반대19

  •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드디어 갔구나 잘 죽었다

    황색포도상구균님 | 1시간전 |

    추천169반대44

  • 세계경제에 뒤집어씌운 그 영국여자가뒈졌군 신자유주의의 비교우위이론은 전부다 개소리 세살먹은막 걸음마끝낸아이한테 우사인볼트가 같이 허들경기하자는거랑 뭐가다르냐 대처인지 전처인지 저 미친망년난년은 영국의 우상일진몰라도 전세계적으로 빈부의격차를 국적으로 더 심화시켰다

    바다님 | 1시간전 |

    추천136반대12

일단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대부분 고인에게 명복을 빌어주기도 하지만, 약소국을 짓밟은 사람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1951년 데니스 대처와 결혼한뒤 쌍둥이 남매를 낳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마가렛대처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 했었죠.

이후 주택, 연금, 재무, 에너지 담당부처의 요직을 거쳐 교육·과학장관에 기용되었고, 1975년에는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면서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고, 이어 1979년 보수당이 집권 노동당을 누르고 승리하면서 영국 첫 여성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대처가 집권할 당시 영국은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영국이 최고의 선진국중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에는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잦은 파업 등으로 나라가 휘청이던 시절이었는데요. 일명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마가렛대처가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대는 과감한 결단과 행동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인데요. 대처는 복지예산 등 정부 지출 규모를 대폭 삭감하고 탈규제,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구조를 분배에서 성장 중심으로 바꾸었고, 1984년 대대적인 탄광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영국병을 고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업자를 양산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뒤따랐지요.

그리고 대처가 인기를 끈데 큰 공신이었던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으로서는 아르헨티나가 무력으로 점령했다고 하지만, 위 지도를 보시면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바로 앞에있습니다. 영국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지요..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증오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 한 게임 때문에 아르헨티나 유저들과 영국 유저들간에 감정싸움이 일어나고, 게임 서버까지 해킹하는 일이 벌어진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포클랜드 섬을 놓고 벌인 전쟁 때문인데요. 

포클랜드 전쟁은 마가렛대처를 1983, 1987, 1990년까지 3번의 연임을 가능케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게 마가렛대처는 영국 사상 11년간 최장수 총리가 됐었지만, 아르헨티나로서는 아직도 포클랜드섬은(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섬) 되찾고자 할 땅이며, 독도 다케시마에 걸린 국민감정이 걸려있습니다.

평가야 역사가 내리겠지요.. 어쨋거나 한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고... 세월앞에서 그녀도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는군요..

마지막으로 마가렛 대처에 대해 요악…

링컨셔 주 그랜샘에서 식료품집 둘째딸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해, 29세 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34세 때 의회에 처음 들어갔고, 

1970년 당시의 에드워드 히스 총리에 의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75년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보수당 여성당수가 되었으며, 1979년 총선거에서는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 전 수상을 누르고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지속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1987년 총선거에 의해 3선에 성공하였으며, 

영국 역사상 최다임기를 역임한 총리이다.

저서로는 《권력에로의 길》이 있다.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