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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그는 누구인가. 김우중 사망 하지않았어요. 김우중 관상 김우중 김대중 관계



김우중(金宇中, 1936년 12월 19일 ~ )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의 몰락한 재벌 회장 입니다. 전 대우그룹회장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한순간 폭락해버리며 신화를 마감하게 되는데요. 김우중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시절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의 덕을 많이 본거라는 말이 있었지요. 김우중 회장 역시 대구 출신이고, 아버지를 6.25 때 잃었으나, 독학하면서 성장했고 남달리 영특했다고 합니다

경기중학교 –> 경기고 –>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

1960년부터 1966년까지 한성실업 근무

1967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창업 이때부터 대우의 신화는 시작됩니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의 김우중 회장

당시 자본금은 500만원 당시로서는 적은돈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부터 대우건설과 대우증권,대우전자 등이 성공하면서 재벌이 되었는데요, 창업한지 7년만에 수출 1억불을 달성했으니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81년에 주식회사 대우를 창립하고 회장이 됩니다. 그리고 1983년 대우자동차는 새한 자동차를 인수해서 재계 4위로 가파르게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김우중 하면 자서전〈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인데요 과거 젊은사람들의 야망에 크게 불을 지핀 책이었지만 대우가 망하면서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요.

 

 

승승장구하던 김우중 회장은 1992년 제 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상 전 대통령의 눌러서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1993년부터 세계경영을 선포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려고 했습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지금은 현대家가 맡고있는 대한축구협회의 회장 이었습니다

1990년에는 장남이 사망하게 되고.

1996년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잘 살아 남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우리나라 제2의 재벌그룹으로 성장하게 되는데요 IMF때문에 한방에 폭삭 주저앉게 됩니다.

서울역 앞에있는 대우빌딩은 대우 그룹을 상징하는 건물어있지만 지금은 외국계가 가지고 있습니다.

한방에 가루가 되어버린 대우.. 1999년 11월 1일, 김우중 회장과 함꼐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은 모두 사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서 출국후 도피를 하게 되는데요

그 뒤로는 말이 많습니다. 유럽에서 햄버거 먹고 살았다는 말도있고, 중국에서 잘살았다는 말도있고…

 

김우중 김대중 두사람이 연관검색어로 뜨는것이 IMF 당시에 김우중 김대중 둘 사이에 말이 많았지요 당시에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것이 김대중정부의 정치적으로 탄압이었다는 말도 있고, 단순한 구조조정 실패라는 말도있고.. 의혹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 뭐 김우중 김대중 둘의 과거를 파봤자 현실이 바뀔건 없지요

6년에 가까운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5년 6월에 한국에 들어와 조사를 받았고,

2006년 11월 3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습니다. 항소는 포기해버렸구요

2007년 12월 31일 김우중 회장은 대통령특별사면을 받습니다.

2013년까지 김우중 전체 추징금의 0.5%정도인 약 887억원을 납부

 

해외에서 김우중 사망 했다고? 사실 아닌 루머

그 뒤로 베트남에 은신중인것으로 드러났고, 김우중 사망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나왔습니다. 나이도 많고 해외에서 숨어살고 있으니 김우중 사망한거 아니냐는 말도 많이 돌았지만 아직 잘 살아있습니다. 김우중 사망 연관검색어가 계속 나오더군요

김우중 치면 젤 먼저 뜨는게 ‘김우중 사망’ 입니다.

 

그리고 김우중 관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김우중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행동지향적 외향성이 강하다

태양인으로 보이는 김우중, 그의 창의적인 모습과 강인함을 여러차례 증명이 되었다

그가 가진 맹수의 사냥본능은 큰 성과와 보상을 부를 수 있으나, 대인관계와 가정에서는 부정적이 될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인 섬세하지 못하고 공경적인 경향이 많다

 

도전이나 명분있는 것에는 다분히 거칠어지고 흥분하게 되며 행동에 힘이 실린다.

매우 속도감 있는 성향이며 걸음걸이 또한 빠르다. 그리고 승부욕이 굉장히 강해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다. 하지만 한번 추락하면 끝없이 떨어지는 성격이라 패하지 않도록 채찍질 한다.

그런 급하고 집중력있는 성격이 급격한 성장을 불러왔으나 몰락도 불러왔다

김우중 관상 이야기.

여튼 김우중의 부활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뛰는 사람들도 있다는 기사가 있더라구요




대우는 몰락했지만 대우를 키웠던 '대우맨'들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나쁜것은 아니지요. 열심히 일한사람들이고 능력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것입니다.

어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던 제45회 대우특별포럼에 김우중 회장이 참석했습니다. 거의 18개월만에 김우중 회장의 모습이 드러났는데요 500여명의 대우맨과 만난 김우중 회장


대우그룹 워크아웃 15년을 맞아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들렀다며,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로있는 신장섭 교수는 책을 냈는데

제목이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합니다 얼마전에 출판기념회도 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 김우중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서 IMF(국제통화기금) 프로그램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과 마찰이 있었다며 그때 정부와의 충돌이 대우그룹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대우그룹은 김대중 정부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인데요. 18조짜리 추징금도 정면돌파하겠다는 말이 나오네요 현재 정,재계에 있는 대표적인 대우맨으로는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대우경제연구소 출신 4인방이 있다고 합니다.

새누리당의 이한구, 정희수, 강석훈 의원은 각각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본부장, 금융팀장 출신이라고 하네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 같은 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출신이라고 합니다 대우출신이라고 해서 김우중 편을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당시 대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