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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김재규 10.26 사건 차지철 경호실장 총정리 동영상, 차지철 묘 그리고 차지철 가족



오늘 차지철이 화제가 되고있네요. 갑자기 왜 실검에 오른걸까요? 어디 다큐멘터리 같은게 나왔나보죠? 차지철은 격동의 8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대통령의 최측근중 한명이었습니다. 나중에 10.26사건때 김재규에게 총맞고 죽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어려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님께 여쭤보니 당시에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하긴 한나라의 대통령이 총격을 맞아 사망하였으니까요. 지금 그런일이 일어나도 나라가 흔들릴 정도로 대충격일텐데,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이 가진 위상과 권력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쇼크였을 것입니다.

검색해보니 10.26사건 당시 미공개 사진이 공개되었더군요 그래서 차지철에 죽은 모습이 나와서 인지 차지철에 대한 검색이 뜨거웠던것 같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권력에 눈이 멀었던 차지철, 결국 그가 떠받들어 모시던 박정희 대통령의 눈까지 멀게한건 아닌가

자신이 하대하던 군대 선배에게 총맞아 죽은 차지철

10.26 사건 당시에 먼저 도착한 수사팀이 찍은 사진. 오른쪽에 누워있는것이 차지철인가 봅니다.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을때부터,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하게 된 그날까지 옆을 지킨 심복이었습니다. 젊은나이에 죽게 되었지요.

차지철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목차는

- 차지철에 대한 설명

- 10.26 사건 김재규와 박정희 대통령

- 차지철 가족(차지철 딸,차지철 아들)

입니다

 

1961년 5.16 쿠데타 뒤에 박정희와 차지철

차지철
車智澈

출생

1934년 11월 16일
clip_image001일제강점기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 오천리

사망

1979년 10월 26일 (44세)
clip_image002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안가

거주지

clip_image002[1]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clip_image002[2]대한민국

학력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직업

군인, 정치가

종교

개신교

배우자

송희성 (1966 ~ ? )
윤보영 ( ? ~ 1979)

자녀

슬하 2녀

부모

김대안(모)

친척

차주원(형), 차상철(이복 남동생), 차혜람(조카)


1972년 5월 23일 군부대에 격려금 전달하는 장면

 

당시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 왼쪽이 송일국의 할아버지이자 김을동 아빠인 김두한.

 

차지철은 어머니가 소실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서자로 태어나게 됩니다. 육사 12기 시험을 쳤지만 떨어지고.. 그래서인지 육사출신들에게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해요. 뒤에 포병간부시험을 봐서 붙어 포병간부후보생으로 군생활을 시작합니다.

차지철이 경호실장을 할때도, 육사나온 현역 중장(별3개) 또는 소장(별2개)을 경호실 차장으로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호실 훈련때는 차지철이가 별4개짜리 대장님같이 보였지요.

포동포동 차지철, 무식했지만 충심 하나로 살아남다가 결국 한방에 훅.

차지철은 소심했다는 어린시절 친구의 증언과는 다르게 또 크고나서는 주먹 좀 썼던 모양 입니다. 차지철이 1960에 미국 포트베닝으로 유학을 갑니다 당시에 육군 레인저스쿨에 들어갔었다고 해요. 거기서 인종차별을 하는 떡대가 있었는데 자기보다 훨씬 덩치큰 미군을 두들겨 팬적이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태권도 시연보여주는걸로 대충 때웠다고..


여튼 차지철은 군인으로서 생활을 하다가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이 닿아서 5.16 쿠데타때 특전사 대위 신분으로 함께합니다

박정희를 가장 가까이서 경호하고 보필하는 사람이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나라의 수장이 되고난 뒤에, 바로 소령으로 진급을 하게 됩니다. 그후 군복을 벗고, 30살에 박정희 대통령이 밀어줘서 국회의원이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할려면 똑똑해야 한다고 공부하라고 해서 정치학과로 가게 되는데요. 한양대에서 2년만에 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시스템이 워낙 엉망이었으니 가능했을것입니다.

 

각하가 곧 국가다. 이말은 차지철이 직접 써서 사무실에 걸어놓기도 했던 말입니다.

육사에 떨어진 차지철은 공부랑은 그렇게 가까운 인물은 아니었더걸로…

그리고 국회 외무위원장, 내무위원장 등등을 맡게 되는데요 외무위원장 맡을 때의 차지철의 당시 나이가 36세였습니다. 그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있었습니다.

차지철이 공부는 별로 못했어도 힘하나는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동료 정치인들을 두들겨 패기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 빽이있으니 아주 기고만장하고 굉장히 거만하고 무식한 행동을 서스럼없이 했다고 합니다.

차지철이 함부로 못한 사람은 김두한 뿐이었습니다. 자기보다 싸움을 잘하니..;;

 

별들을 거느렸던 차지철 경호실장

이때까지만 해도 작전차장보를 하던 전두환 행정차장보 노태우가 줄줄이 대통령 해먹을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차지철은 당시에 아주 기세등등 했습니다.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되고나서는 위상을 높여야 한다며, 원래 차관급이었던 경호실장의 자리를 장관급으로 올려놓고,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현역 별3개 2개짜리들을 자기 밑인 경호차장이나, 차장보로 두기도 했습니다.

노태우 전두환이 군대 기수로는 차지철보다 위인데도 불구하고 차지철에게 매일 거수경례를 해야했습니다. 이밖에도 차지철이 워낙 월권행위 등 권력의 중심부에서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밉상 행동 때문에 여기저기서 미운털이 굉장히 박히게 됩니다.

 

어딜가나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했던 차지철

그런 과정속에서 김재규와 사이가 많이 안좋아지게 됩니다.

당시 육사 출신 군인들이 별을 달게되면 작전차장보로 있던 전두환에게 꼭 인사를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전두환은 차지철에게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구요. 그러면 차지철은 자기 이름을 새긴 지휘봉을 ‘하사’하기도 했다지요. 그래서 차지철은 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권력에 취해서 중심을 잃은걸 알 수 있습니다.

 

차지철 드라마 매니아가 되다

차지철은 육영수 여사가 죽고 난 뒤에 드라마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라는 드라마는 죄다 다 챙겨보면서 마음에 드는 여배우가 있으면 청와대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데려와서 청와대 구경을 시켜주었는지, 연기 지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ㅋ

당시에 차지철은 아내를 잃은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것이라며 여배우와 여가수들을 다방레지처럼 수시로 불러서 자리에 앉힙니다.

 

차지철은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탱크로 밀어버려서 캄보디아처럼 2,3백만 죽이면 조용해진다고..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기 전에 한 측근에게 박정희에게 열혈충성을 하는 부하중 몇명에 댛나 우려를 표하면서 왜 남편에게 연예인을 소개하냐는 말도 했던 진술이 나온걸 보면, 차지철은 그전부터 그저 본인이 좋아서 했던것 같기도하고, 무식한 차지철이 ‘각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따로 강구하지 못해 그런쪽으로 열심히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차지철은 1979년 10월 18일 부마민주항쟁 당시에 "캄보디아에서도 3백만을 죽였다는데 우리가 2,3백만명 정도 죽이는게 대수겠냐"는 말까지 했다고 하지요. 차지철에 대한 평가는 다른걸 볼필요도 없이 이딴소릴 했다는것만 봐도 김재규가 죽이기 잘했다는 소리가 나올만 합니다.

 

박정희 김재규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을 죽인 김재규, 당시 사건 재연장면

차지철은 자기 위에 박정희 대통령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식으로 행동을 해왔고, 차지철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상당한 미움을 받습니다. 특히나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사 동기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반말까지 써가면서 김재규를 무시해왔으니, 당시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이유야 확실히 못박을 순 없어도, 차지철은 그간 쌓인 짜증때문에 죽였을것입니다.

김재규는 처음에 총을 들고 들어가서 차지철이에게 건방지다고 말을 하면서 먼저 팔에 총을 한방 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지철은 총알맛을 보고 겁이나서 화장실로 도망가버렸고, 그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10.26 사건 당시 그 옆에 가수 심수봉이 있었구요. 심수봉 역시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서 트라우마가 굉장히 오래 갑니다.(심수봉도 피해자인데 가끔 심수봉에게 뭐라하는 네티즌이 보이더군요;;)  여튼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총한방 더 맞고 죽습니다.

차지철이 그렇게 아부하고 충성을 다하더니 총을 꺼내자 도망가기 바빴다니, 위기상황에서 그사람이 누군지 알게된다고 차지철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차지철에게 너무 많은것을 준것이 자신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의 진술






차지철은 요상한 크리스천

차지철 무덤, 차지철 묘

위 차지철 무덤을 보면 아시겠지만 차지철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또 차지철이가 금전문제 등에 대해서는 굉장히 깨끗했다고 하네요. 여자도 마누라만 봤다고 하니 참 재미있는 인간입니다. 군대 선배가 사업을 위해서 대출청탁을 하자, 차지철은 그 사람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ㅋ..

차지철이 경호실장 할때, 권력과는 어울리지않는 소박한 집에 살고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에게 시켜서 2층집 하나 지어줬는데, 그것마저도 자기 앞으로 해놓지 않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군에 있을때 알고 지내던 후배가 땅문제로 청탁을 헀는데,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도와줬나 봅니다.(이게 말이되나 싶기도하고) 여튼 고맙다고 닭 몇마리 가지고왔는데 그것마저 돌려줬다는 썰이 있지만, 이제와서 이런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사실인지도 모르겠고

1987년 8월 언론 보도를 보면 차지철 아내였던 윤보영이 대주상호신용금고 대주주 김신일-신영 형제에게 14억원을 빌려준 뒤 그 돈을 떼였다는 기사가 있고, 뒤에 미국에서 윤보영 동생이 부동산 처분 문제 등 여러가지 말이 나오는걸 보면 또 뒤로 알게모르게 여러가지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2-3백만명 죽여버리면 된다고 했던 차지철은 하나님 믿었으니까 천국 갔을까요?

 

차지철 가족 누가 남았나?

차지철 아들, 차지철 딸이 뜨는데 가족관계를 보면 차지철 아들은 없는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딸만 두명이 있다고 하는데, 기사들을 보면 차지철 가족은 미국으로 투자이민을 갔다는 말이 있네요. 뭐 지금 우리나라 살아있어도 별 관심도 없지만요. 이런저런 카더라 소식을 들어보면 차지철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차지철이 깨끗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모를 일이지요. 또 차지철 당시에 워낙 권력이 막강했으니 주변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챙겼을수도있구요

아래는 차지철에 대한 방송 동영상들 입니다.

MBC] 제4공화국 27부 (차지철과 경호실 上)

MBC] 제4공화국 28부 (차지철과 경호실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