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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틸리 필름 의혹과 진실



신틸리 필름 의혹과 진실

 

<많은 파장을 몰고온 장본인, 레이 산틸리와 그의 필름>

산틸리 필름

1995년 8월 28일 오후 9시, 영국의 자칭 음악 프로듀서인 레이 산틸리가

자신이 1994년 11월 미국의 종군 사진사에게 10만 달러에 사들였다는

1947년 뉴멕시코주 로즈웰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해부 장면을 담은

16밀리 필름이 전 세계에 동시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줍니다.

해당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필름의 진위에 대해 호의적인 의견을 피력한

각계 전문가들과 외계인 해부 장면을 담은 필름이 미국 코닥사로부터

1947년 필름이 확실하다는 감정을 받은 덕분에 이 '산틸리 필름'은

오랫동안 외계인에 대한 진실로 비쳐왔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진위논란에 휩싸여왔었던 산틸리 필름은 2006년 레이 산틸리와

외계인 해부 필름에 대한 진상을 자전적 스타일로 풀어낸 영화 'Alien Autopsy'의

개봉과 당시 산틸리에게 외계인 모형을 만들어주었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특수효과 조각부분을 전담하던 존 험프리즈가 각 언론사를 통해 진상고백을 하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필름 중 하나였던 산틸리 필름은 그들의 유쾌한 사기극으로

끝나고 마는 하나의 해프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영화에 '또다시' 출연한 험프리즈가 만든 외계인 모형>

하지만, 산틸리 필름의 사기극을 장본인이 밝히는 영화인 Alien Autopsy에서

산틸리는 자신이 세상에 공개한 외계인 해부 필름은 사실 산화되어 내용이

지워진 원본 필름의 내용을 주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연한 필름이며

영화의 엔딩 부분에 일부가 복원된 원본 필름의 영상이 방영되며 실제 그들이

출연하여 '세상을 돌면서 재밌었던 것들 중의 하나는, 레이에게 필름을 판

촬영자였어요'라는 대화 부분이 영화에 삽입되며 로즈웰 외계인 해부 필름의

원본에 대해 자신이 소유했음을 주장하며 끝나게 됩니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 나오는 원본 필름의 복구 영상>

그렇다면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말 레이 산틸리는 진짜 외계인 해부 필름을 보유했던 것일까요?

 

모순 하나

산틸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외계인 해부 필름을 촬영한 사진사는 워싱턴 DC 지역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1947년 6월 명령을 받고 뉴 멕시코 주 로즈웰로 향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전체의 기지에는 반드시 종군 사진사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워싱턴의

사진사를 부를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모순 둘

산틸리는 문제의 필름을, 자신에게 필름은 판 사진사가 직접 현상했으며

워싱턴의 군 관계자가 회수하러 오지 않아 결국 자신이 소지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군의 극비 프로젝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진사 자신이 직접 현상하는 일이 없으며,

촬영된 필름은 마지막 1프레임까지도 엄격히 회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를 더욱 엄격히 하기 위해 '프레임 카운터'라는 기계로 프레임 수가 계산되어

'99피트와 10프레임'이라는 형태로 필름의 길이까지도 관리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미군이 산틸리의 주장처럼 그렇게 허술히 종군 사진사에게 필름을 넘겨주다시피

관리했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모순 셋

1947년 당시에 미군은 기록용으로 16mm 컬러, 35mm 컬러, 그리고 16mm 흑백필름

세 가지를 사용했으나 그들은 의학적인 장면을 찍을 때 반드시 16mm 컬러 필름을

사용하는 것인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산틸리의 원본 필름에 대한 설명 중 컬러에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없었으며

영화의 엔딩 부분에 보이는 일부 복구된 원본 필름의 외계인 시신 회수장면은 흑백영상이었습니다.

(물론 이 영상은 영화의 극적인 연출을 위한 제작된 영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모순 넷

산틸리 필름이 한창 논쟁을 불러일으키자, 당시 그의 필름을 회의적으로 보던

전문가가 해당 필름을 찍었다는 카메라맨의 풀 네임과 군의 인식 번호를

공개하면 자신이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공군 기록 센터에 문의하여 진위를

가려주겠다며 이같이 요청하지만 산틸리 측에선 이를 무시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레이 산틸리들이 집에서 만든 해부 영상을 관람하게 되었다>

당시 산틸리 필름에 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전문가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를 포함해),

조잡한 사기 영상으로 치부하던 회의론자들도 많았으며 그들의 의견이 굉장히

'분석적'이었다는(당시 산틸리 필름을 옹호하던 사람들의 의견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은 이미 흥미롭고 자극적인 산틸리의 필름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산틸리 필름에 회의적이던 전문가들은 당시 미군은

의학적으로 중요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촬영할 때엔 반드시 두 대의 고정카메라를

사용해왔으며, 1번 카메라는 높은 삼각대에 고정해 수술대 및 해부대 가로 선상의

높은 위치에서 촬영하였으며 2번 카메라의 경우엔 대상의 머리부분 쪽의 천장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 대의 카메라로 자주 움직이며

촬영되고 있는 산틸리 필름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도 외계인의 내장이나 뇌 부분이 촬영될 때는 반드시 초점이 흐려진 체로

찍히는 점들과 2면 밖에 보이지 않는 마치 텔레비전 세트와 같은 벽,

실제 해부의가 가위를 잡는 방법과의 차이, 외계인의 눈 덮개가 절반밖에 없는 점 등이

바로 산틸리 필름이 거짓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데, 산틸리 필름의 진위에서 항상 산틸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미국 코닥사의 필름연도에 대한 감정결과는 어떻게 했던 것일까요?

산틸리는 이런 불가능한 작업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해결했습니다.

바로 산틸리 필름이 아닌 다른 필름을 감정용으로 보낸 것입니다.



<당시 산틸리가 미국 코닥사에 감정의뢰 했던 필름의 내용>

그럼으로써 산틸리는 코닥사로부터 '감정한 필름은 1927년, 1947년, 1967년에

사용되던 자사의 필름이다'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고, 그는 이를 코닥사에서

'산틸리 필름을 1947년에 촬영된 것이다' 라고 감정했다는 내용으로 공표한 것입니다.

<당시 산틸리가 고용했던 노숙자>

후에 자신의 필름이 점점 가짜로 치부되자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자를 고용해

1996년 12월, 당시 외계인을 촬영한 사람이자 자신에게 필름을 판 사람으로 위장시켜

방송에 출연시키지만 2006년 4월 4일 결국 그가 잭 바넷이라는 노숙자였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사정에 의해 노숙자를 위장출연시킨 것이며 자신에게

진짜 필름을 판 사람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UFO와 외계인의 진실을 폭로하는 프로젝트의 '디스클로저 프로젝트'>

그리고 디스클로저 프로젝트

2001년 5월, 워싱턴 DC 프레스 클럽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UFO와 외계인에 대해

폭로하는 프로젝트인 일명 '디스클로저 프로젝트'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디스클로저 프로젝트는 수장 스티븐 그리어 박사를 필두로 NASA, 전직 각료와 군인,

과학자, 언론인, 기자, 저널리스트 등 400 여명의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과거 정부와

군대가 숨겨왔던 UFO와 외계인에 대해 폭로한다는 주장의 프로젝트의 팀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PC 속 집적회로나 초고속 인터넷의 핵심 소재인

광케이블 외에도 F-117기의 스텔스 기술, 열적외선 기술, 이동식 원자로, 초점착섬유,

레이저 등 수백 가지의 신기술이 1947년 로즈웰에 추락한 UFO 외계 비행선에서 왔으며

자신들이 NASA와 정부관련 기관서 정보 비밀 엄수라는 각서와 서약을 한 뒤

외계인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또, 디스클로저 프로젝트에서는 1953년 5월 21일 애리조나 킨구만의 산에

불시착한 UFO에 타고 있던 외계인의 해부 장면을 담은 필름을 복사한

비디오테이프라며 자신을 전 연방 항공국(FAA)의 직원이라 밝힌 캘러한에 의해

산틸리 필름과는 또 다른 외계인 해부 필름이 공개되기에 이릅니다.

<캘러한이 공개한 비디오 테이프의 외계인 시신>

하지만, 자칭 전문가들의 모임인 디스클로저 프로젝트 측에서 제시한

세기의 특종이자 외계인 존재의 증거물인 이 비디오테이프는

사실 1997년 4월 4일 ABC 텔레비전의 '20/20'이라는 TV Show에서 방영된

특수 촬영된 영상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이 새로운 외계인 해부 영상은 스티브 존슨이라는 특수 촬영 전문가의 팀이

1995년 공개된 산틸리 필름처럼 지금의 수준으로도 얼마든지 외계인 해부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키 위해 1997년 만들어진 산틸리 필름 속의 외계인보다

더 정교한 외계인의 해부 영상이었던 것입니다.

<스티브 존슨 팀원들이 이름 붙인 J-ROD라는 외계인의 제작은 놀랍게도 1997년에 이루어졌다>

한편, 노스 캐롤라이나의 Appalachian State University를 나와 1987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디스클로저 프로젝트의 스티븐 그리어는 디스클로저 프로젝트에서 수장이자

박사라는 존칭을 받으며 정부의 외계인 은폐설을 밝혀내는 권위 있는 지식인으로 비치지만

실제론 그가 1990년 외계 연구센터를 설립 후 외계지성과의 접촉을 위한 훈련들과 '리모트 뷰잉'

같은 초능력에서부터 '우주의식' 같은 채널러(심령술사의 일종)의 양성과 예지능력 개발,

그리고 외계인과 관련된 광범위한 음모 이론을 믿으며 자금 지원을 요청하던 기관의

설립자였다는 것을 알거나 관심 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외계문명 음모론자이자 디스클로저 프로젝트의 수장인 스티븐 그리어>

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칭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팀은 2001년 기자회견 당시

자신들에게 질문하는 기자들은 남미 쪽의 기자들뿐이었으며, 이 기자회견과 관련한

뉴스를 미국의 어떠한 방송사에도 다루지 않은 점을 들어 자신들의 진실폭로에 정부가

당황해 감추려고만 한다는 주장을 하며 자신들의 폭로내용을 담은 미디어물들을

인터넷상으로 판매하며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끌어내려 하지만 이 기자회견 이후로

어떠한 뚜렷한 활동이 없어 많은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서운하게 만듭니다.

<당시 소규모로 진행되던 기자회견, 뉴스에 정식으로 소개될만한 '행사'였는지는 의문이다>

<디스클로저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갖가지 출판물들

그들은 심지어 Supporter, Donor, Associate Member, Executive Member, Benefactor,

Directors Circle, Founder, Lifetime Member - Option 1, Lifetime Member - Option 2

이렇게 아홉 단계로 나누어진 레벨에 따른 멤버십 가입을 위해

최소 20달러에서 최고 10만 달러의 가입비용을 요구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라는 누군가의 말은 의문과 진실해명 과정

모두에 해당되는 말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